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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내가 특히 관심가진 인물을 꼽자면 이사벨라 데스테, '여왕 마고'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후아나 라 로카, 그리고 체사레 보르지아와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다.


이 인물들 가운데서도 유일한 남자인 체사레 보르지아는 익히 알려져 있듯,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이기도 하면서 '마키아벨리즘'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체사레 보르지아를 알게 된 경위는 군주론이 아니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를 통해서다. 나와 비슷하게 유럽 왕족들의 사생활이나 정치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지인이 루크레치아란 인물을 내게 소개해줬다. 그때가 아마 중학생때였을 것이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를 논할 때 체사레가 빠질 수 없으니, 그때 이 남매에 대해 알게 된 것.


이윽고 나는 <군주론>을 사들였고, 솔직히 이제와선 책 내용이 거의 기억나질 않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를 열심히 읽었다. 오직 체사레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체사레 보르지아를 주인공으로 한 <칸타렐라>라는 만화책을 읽게 되었는데, 실망만 했다. 또르르... 웹을 통해 여기저기서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후엔 시오노 나나미의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바로 쇼타임에서 2011년 4월경부터 방영한 <더 보르지아(The Borgias)>를 보게 됐다. 역사극이야말로 나를 역덕, 사학도로 이끌어준 계기(이자 원흉)이고, <오만과 편견>이나 <북과 남>, <노생거 사원>, <다운튼 애비> 등의 시대극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 취향은 <튜더스>, <로마> 같은 핵심 권련층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극 및 치정극이다.


<튜더스>는 앤 불린이 퇴장한 이후부턴 실망만 거듭 주었고, 그에 비해 <로마>는 완성도는 높지만 어마어마한 제작비탓에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되면서 2시즌만에 막을 내려버렸다. <로마> 이후로는, 내 취향에 부합하는 역사극을 볼 수 없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내 취향에서 벗어난 역사극이고, <왕좌의 게임>은 복식에도 관심 많은 나에게 약간 부족...하지만 곧 볼 예정.


그러다 발견한 게 바로 이 <더 보르지아>이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체사레 보르지아, 이하 보르지아 일가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극이라니! 거기다 알렉산데르 6세를 맡은 배우가 제레미 아이언스라니! 내가 어떻게 안 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더 보르지아>는 여러 면에서 내 취향에 부합한다.
그 조건이란, 첫째, 권력 핵심층내의 얘기일 것. 당시 기독교(정확히는 가톨릭)를 국교로 하는 유럽 국가들의 군주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왕홀을 쥐어줬던 것은 교황이다. 즉 교황이 왕을 임명했던 것이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교황을 아비뇽에 가둬두고 인질로 삼기 전까지, 교황의 권한이 그만큼이나 대단했다. 때문에 15세기경의 교황의 권위는 그것이 절정에 달했던 십자군 전쟁시기보다는 현저히 추락하였으나,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전까지 교황의 성좌는 곧 권좌였다. 로드리고 보르지아, 즉 알렉산데르 6세는 바로 15세기 말엽에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역사상 가장 세속적이며 타락한 교황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정치극일 것. 이건 두 말할 필요 없다. 특히 알렉산데르 6세의 교황 재위 동안 이탈리아엔 내우외환이 끊이질 않았는데, 대표적으로는 나폴리의 계승권을 둔 프랑스와의 대립, 피렌체 수도승인 사보나롤라의 출현 등이 있겠다. 게다가 알렉산데르 6세에게는 그 방탕한 행적과 출신(보르지아 가문은 스페인 출신이며, 유대인 피도 섞였다.)때문에 정적이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후에 교황이 되는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와 스포르차 가문 등이 있다.

셋째, 치정이 있을 것. 실제 알렉산데르 6세에게는 여러 정부들이 있었고, 드라마에선 교황의 호색한 행적을 충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아들들과 딸의 애인(또는 몇 번 자는 여자)들까지도. 허나 다행하게도 형제가 한 여자를 두고 치정하는 얘기는 없으며, 그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아직 전면에 다뤄지진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체사레가 누이 루크레치아의 남편들 및 애인들을 정치적, 감정적 이유로 처결했으니 그 얘기도 시즌3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더 보르지아>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테마들을 주요하게 다룬다. 인물로는 단연,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그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를 중심으로 한다. 한 마디로 이 부자의 야심과 욕망이 핵심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 정략적 이유로 여러 번 결혼하는 루크레치아를 곁들이면 완성.

그러나 예상 외로 시즌 2까지의 체사레 보르지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체사레 보르지아와는 좀 다르다. 정적을 제거하는데 가차없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인물이 그의 대표적 이미지일텐데, 이 극의 체사레는 아직까지 얌전한 편이다. 물론 아버지의 교황 선출과 그 이후의 아버지의 권력 유지를 위해 모략을 꾀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인하거나 주살하는 게 종종 출현하긴 하지만, 야망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것과는 다르다. 체사레의 현재까지의 권모술수나 협잡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그것은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가 그에게 강요한 성직자로서의 의무때문이다. 극중 체사레는 알렉산데르 6세에게 현재와 미래를 휘둘려,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지 못한다. 때문에 자신이 바라던 것을 가진 동생 후안을 시기하며(더 정확히는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동생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그와 갈등하며 대립한다. 시즌2 까지의 주요한 인물간 갈등은 바로 부자 알렉산데르 6세-체사레와의 갈등이며, 다른 하나는 형제 체사레-후안의 갈등이다. 물론 비중은 전자가 앞선다. 또한 차이점은 전자는 애정과 갈등이 양립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시즌2 막바지에서 형제간 갈등이 정점을 향하며, 후안이 체사레 손에 살해당한다. 이 일로 부자간의 관계, 체사레의 이후 행보가 본격적으로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바로 체사레와 루크레치아와의 관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루크레치아는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는 물론이고 오빠인 체사레와도 근친상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게다가 루크레치아를 두고 체사레와 후안이 치정했다는 설도 있다.) 이게 사실인지, 혹은 보르지아 일가를 비난하기 위해 떠벌려졌던 풍설이었든간에, 어쨌든 보르지아 일가가 근친상간으로 유명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더 보르지아>에서는 부녀간은 물론이고 남매간의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진 않다. 다만, 체사레와 루크레치아의 관계가 보통 남매지간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친밀하게 연출된다. 또한 시즌3 프로모 영상을 보아하니, (보통 이상으로 친밀하지만 어쨌든)남매이기만 했던 둘의 관계가 급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간단평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괜찮은 역사극. 특히 성결함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타락한 보르지아 가문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여주는데 힘쓴다. 제레미 아이언스 연기야 두 말할 필요없고, 초면인 체사레와 루크레치아를 분한 배우들 연기도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다. 시즌3부터 우리가 흔히 아는 '냉혹한 야심가' 체사레를 볼 수 있을 듯한데, 뭐 그것은 시즌이 나와봐야 알겠지. 덧붙여 많은 제작비가 들었다는데, 그를 반증하듯 세트장과 의상이 호화롭다.

그리고 체사레-루크레치아 케미b

시즌별 혹은 한 편 당 후기는 구미가 당기면 쓸 예정이지만 귀찮아서 안 쓸 가능성 농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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