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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릉왕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나의 중화권 드라마(이하 중드)에 대한 편력을 쓰고자 한다.

 

내 중드 입문작은 두 말할 것 없이 <황제의 딸>이었다. 중국 본토는 물론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지라, 이 드라마를 통해 조미, 임심여, 소유붕을 알게 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황제의 딸 이후에도 역덕의 본분을 살려 고전중드를 꽤 봤다. 몇 편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가는데 시나리오상 괜찮았다고 꼽을 수 있는 건 <강희왕조>나 <대청풍운>, <후궁견환전> 정도.

 

사실 역사극이란 이름만 빌리고 주는 로맨스가 되는 고전멜로물이나, 역사와 거의 무관한 무협물은 취향이 아니다. 나의 역사극 취향은 다른 포스트에도 밝힌 바 있듯이 확고하게 1) 권력 핵심층을 다룰 것 2) 정치극일 것 3) 치정이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4) 궁중 암투가 포함될 때도 있는데, 이 네 가지가 고루 섞인 게 <후궁견환전>이다. <후궁견환전>은 쓰자면 포스트를 몇 개를 걸쳐 쓸 만한 작품이니, 간단히 감상을 밝힌다 : 중국도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대를 배경으로 한 중드는 여전히 여러모로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재밌게 봤던 현대극을 꼽자면 <악작극지문2>, <아가능불회애니>가 있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모두 여자주인공으로 임의신이 나온다.

 

처음 <악작극지문2>로 임의신을 접했을 때만해도 도저히 적응 안되는 비쥬얼이었다. 남녀 주인공이 쌍으로 로코물의 주인공이라고는 용납할 수 없는 비쥬얼이라서 몇 번을 보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해괴하지. 정말 적응안되던 남녀주인공들이, 자꾸 보니까 정들고 극 몰입에 방해도 안되고, 주인공 케미도 충천하듯이 좋고,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결국은 다 봤다. 확실히 이 드라마를 계기로 임의신이 내게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내겐 임의신은 유일하게 출연 드라마 자체에 신뢰감을 주는 중화권 배우다.

 

서론이 길었는데, 결론은 내가 역사극을 고르는 조건에서 빗겨간 <난릉왕>을 보게 된 것도 다 임의신때문이었다. 즉, <난릉왕>은 분류하자면, 로맨스가 주가 되는 역사극이다.

 

<난릉왕>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한이 멸렬한 이후인 위진남북조로, 그 가운데서도 끝무렵이다. 알다시피 이 시기는 한족이 장강 이남으로 쫓겨 내려가고 이민족들이 중원을 차지한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난릉왕은 그 이민족 중 선비족이 세운 국가인 북제(北齊)의 황족이자 무장이다. 그는 북제 추존 황제인 문양제의 4남으로, 본명은 고효관(극에서 숙이란 이름이 나오는데, 숙은 아명이다.), 자는 장공이며 봉지가 난릉(군)이기 때문에 난릉왕으로 통칭된다. 사실 난릉왕에 대해선 기록이 자세하진 않다. 위진남북조 시대가 혼란기라 자료나 사적도 그 양이 적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에 대한 유명한 사실은 열거하자면, 경극에서 묘사되길 예쁘장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전장을 누볐다는 것(이건 미화된 얘기이다.)과, 전공이 높아 그를 시기한 사촌인 북제 마지막 황제 고위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것이다. 실로 드라마 주인공으로 쓰기 좋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절륜한 무예를 지닌 미남에, 보통 이상의 역량탓에 사촌인 황제의 시기를 사서 그 손에 죽임 당한 비운의 인물 아닌가.

 

나열한 대로 <난릉왕>에서 주인공 난릉왕 고장공은 미남에, 애민정신이 투철하고, 불패의 전신(戰神)에, 거기다 여자주인공한테 일편단심인 남자다. 신분 또한 황족이니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여기에 비운의 죽음이 '예고된' 비극성까지 가미되어 있다.

 

한편 여자주인공인 양설무는 가공의 인물로, 극 안에서는 무함의 후손이며 천녀(天女)이다. 도대체 천녀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천녀를 얻는 자, 천하를 얻으리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징성으론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의 화신정도 되는가 보다. 아무튼 설무는 역시 천녀인 할머니와 함께 무족 사람들(단지 무족이라고 나오는데, 대충 무함의 후손들 정도인듯.)과 외부세계와 단절된 백산촌에서 은거하듯 살고 있다. 이야기는 이 양설무가 우연한 계기로 난릉왕 고장공과 일별하게 되면서, 난릉왕과 사랑에 빠지고, 이내 백산촌을 떠나 난릉왕비가 되는 과정과 그 이후이다.

 

중드의 특성인지, 남녀주인공이 나란히 영웅적 요소를 갖고 있다. (비범한 출생, 뛰어난 능력, 시련과 역경, 조력자, 불행한 결말etc) 그리고 특징으로 또 하나 들자면, 결말을 먼저 선고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극 초반부에 설무의 할머니가 강경하게 난릉왕과 손녀의 관계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가 난릉왕이 형제(고위)에 의해서 1년 후에 죽을 것이고, 그와 함께 죽는 난릉왕의 유일한 아내는 설무가 아닌 정씨 성을 가진 여자[鄭妃]이기 때문이다. ─이 예언(설무의 할머니는 점복으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이 곧 극 전개의 방향추가 된다. 물론 마냥 저대로 되진 않는다.

 

여기서 또 통속극에서 흔히 등장하는 주제가 나온다. 바로 운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설무의 할머니가 둘 사이를 반대한 이유인, 그 운명의 내용이다. 나중에 설무가 정씨성을 사성받아 왕비가 되므로, 그녀가 바로 난릉왕의 유일한 아내 정비(鄭妃)가 되니 할머니의 예언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게다가 할머니가 설무와 난릉왕의 첫만남 직전에 설무의 운명을 막을 힘이 자신에게는 없노라, 한탄하는 장면으로 보아 예언의 정비는 설무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극에서 난릉왕은 고위의 손에 죽지 않는다. 오히려 죽는 건 설무이다. 그러니까, 설무가 결국 운명(난릉왕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바꿔낸 것인지, 애초부터 그녀만 죽는 쪽이 운명이었던 건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극 전체의 뉘앙스로 봐서는 운명을 바꾼 걸로 보이지만...

 

전체 내용은 이쯤하고, 배우 얘기를 하고 싶다.

 

상술했듯이 로맨스가 주가 되는 역사극은 선호하지 않는다. 당연히 <궁쇄심옥>을 보지 않았고(근데 <보보경심>은 앞 부분 조금 봤다. 류시시가 예뻐서...), 그래서 감독 겸 난릉왕역을 맡은 풍소봉은 초면이었다(고 생각했다.) 방금 서핑으로 안 사실인데, 영화 <초한지-천하대전>에서 항우 역을 맡은 게 이 배우였을 줄이야. 그 영화를 보진 않았는데, 티비에서 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유역비가 우희로 나온다길래 집중해서 봤는데, 그때 항우역을 맡은 배우가 잘생겼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풍소봉이었다니. 느낌이 사뭇 다른데...? 항우때 분장이랑 의상이 훨씬 잘 어울리고 잘생김+100 쯤 하는듯. 난릉왕에서 못생기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헤어스타일때문에 처음엔 용서가 안됐다. 변발 아니니까, 그나마 나은 건가. 어쨌든 연기는 나쁘지 않다. 특히 여자주인공을 향한 눈빛 연기가 섬세하다.

 

양설무역의 임의신은 아시아 로코퀸답게 연기한다. 모든 상대 남자 배우와 케미를 자랑하는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난릉왕에서도 풍소봉과 케미가 좋다. 그리고 케미 외에도 양설무역에 임의신을 캐스팅한 게 적절했다고 느껴지는 게, 제목이 <난릉왕>이니 극을 이끄는 인물이 난릉왕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전체 극을 이끄는 인물은 그가 아니라 양설무인 연유이다. <난릉왕>의 전체 플롯인 '운명'을 먼저 아는 것도, 그 운명을 바꾸려고 투신하는 것도, 결국 운명을 바꾼 것도 그녀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난릉왕>은 두 사람의 로맨스이기도 하면서, 양설무의 난릉왕 구명기이기도 하다. 이게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임의신이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래서 결론

 

절절한 맛이 있는 고전 멜로. 풍소봉과 임의신 케미b 사실 멜로가 뭐 따로 있나, 남녀 주인공 케미가 터지면 성공이지. 그리고 정말 의외롭게도 오프닝인 입진곡을 제외하곤 오스트가 드라마 전체 분위기랑 딱 들어맞고 좋다. (개인적으로 엔딩인 정당의 수장심도 좋지만, 가가의 명운이 더 좋다.) 근데 cg는 좀 땀남;;; 그나저나 의상담당, 헤어담당 진짜 뭐죠? 이민족 스타일이라고 하면 다 익스큐즈된다고 누가 그러오... 난릉왕 분장은 후반부에 머리 풀어헤친 때가 제일 나았고 심지어 설무 의상도 별로 안 꾸민 후반부가 더...

 

뱀발

 

대략 21화~25화는 정신건강을 위해 스킵하는 것도 좋을 듯

 

뱀발2

 

최근 중드 중 나의 제일 기대작이었던 건 난릉왕이 아니라 <미인무루>였다. 왜냐면 늘 도르곤-대옥아만 보다가 홍타이지-해란주를 비중있게 다룬다길래. 근데 평이 기대완 다른 듯. 그리고 원산산 뿌리기 왜죠...? 하여튼 우정에서 만든 건 내 취향이 아님... <미인심계>도 보다가 중도에 포기했었는데; 두의방이 너무 정의롭게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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